영원의 설계도
2023. 7. 16.

 

  영구 기관의 첫 번째 조각-점화

  베로니카 플레처는 영구 기관의 마지막 한 조각을 찾는 일에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의 한순간을 오롯이 바쳤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타국의 연구자가 보낸 편지 한 통이 그녀의 인생을 통째로 뒤흔들어 놓은 것이다. 얼핏 보기에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연구,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실현하지 못한 유토피아를 향한 첫걸음을 도와달라는 제안을 베로니카는 선뜻 수락했다. 자신의 지성에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문제를 먹이로 던져줌으로써 성장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 누구도 깎아내릴 수 없는 견고한 명성의 탑 위에 올라앉고 싶었던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단어 하나하나를 신중히 고민하고 꾹꾹 눌러쓴 흔적이 보이는 열정적인 문장들에 감화된 것인가. 어쩌면 그 모든 이유가 힘을 합쳐 끝이 보이지 않는 연구에 그녀를 몰아넣고 도취되게 했는지도 모른다.
  알바 로렌츠의 연구 주제는 베로니카가 평생 탐구해왔던 신학과는 천 년쯤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지극히 과학적이고, 지극히 논리적인 학문, 물리학이었다. 그러나, 무슨 것이든 극과 극은 맞닿아 있는 법이다. 태초 이래 무지에 가려져 있던 수많은 신비들은 수백 년간 눈부시게 발전한 과학에 야금야금 좀먹혀들어가며 설 자리를 잃고 그 민낯을 드러냈으나, 여전히 많은 우주의 비밀들은 베일 아래 숨죽이고 도사린 채 어떤 것으로도 해명되지 않는 치명적인 오류이자 변덕스러운 논리의 암살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이 불안정한 공존을 놓고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해명할 수 없는 것을 미래의 학자들이 가질 몫으로 돌렸으며 신학자들은 더이상 시시하기 짝이 없는 해부된 신비들을 신이 내려준 지성 덕분으로 여겼다.
  이러한 팽팽한 대립 속에서 이례적으로 한 과학자와 한 신학자가 손을 잡았던 것은, 서로에게 모자란 단 한 조각을 채우기 위한 역사적인 휴전이었다. 알바 로렌츠는 도저히 과학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의 도움이 필요했고, 베로니카 플레처는 이성의 시대에 쇠락해가는 신학을 되살리기 위해 압도적인 신의 힘을 만천하에 알릴 필요가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살점으로 배를 불리지 않으며 서로의 피로 목을 축이지 않는 시대, 그런 시대가 도래하기만 하면 온 인류는 자연스럽게 신의 존재를 깨달아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싸움을 멈추며 아름답고 평화로운 태초의 낙원으로 회귀하리라는 믿음이 그녀의 연구에 대한 열정을 단단히 지지하고 있었다. 알바 로렌츠는, 글쎄, 그 냉철한 지성인이 바랐던 결실은 온 인류를 포용하는 원대한 계획보다는 확실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욕망일 것은 확실했지만, 그의 열정은 그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그야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연구를 시작하고, 지속해오다가, 끝내 자신이 결코 믿어본 적 없는 신에게까지 도움을 청하려 들 정도였으니 그의 열정이 베로니카보다 못하다고는 말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두 개의 부싯돌이 맞부딪혀 비로소 불꽃이 튀듯이, 두 학자가 가진 욕망의 세계가 서로 맞부딪힐 때 진정으로 영원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영구 기관의 두 번째 조각-가동

  두 사람 사이를 오가는 편지는 처음에는 아주 단순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분야에 통달한 학자이고, 또 자신의 분야 외에도 호기심이 많고 이해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라, 답신을 하나 써 보낼 때마다 그 답신에 대한 새로운 질문이 열 가지는 돌아오는 까닭으로 날이 갈수록 편지의 길이는 길어져만 갔다. 자연스레 상대방의 편지를 이해하고 고심 끝에 답변을 써 보내는 시간 또한 길어져 편지를 주고받는 속도 또한 점점 느려졌지만, 서신 왕래가 지속될수록 두 사람의 열정은 뜨겁게 타올랐다. 고민 끝에 길고 장황한 답변을 써 보낸다고 해서 자신의 차례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두 학자는 체스판 위에 자신의 말을 놓은 경기자처럼 끊임없이 상대의 다음 답변을 예측하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으며 최후의 한 수를 놓기 위한 밑밥을 차근차근 깔아두었다. 누가 그들의 편지를 몰래 뜯어 훔쳐 보았다고 해도 어마어마한 길이로 쓰인 난해한 문장들 속에서 이해할 만한 내용을 단 한 줄도 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그들의 편지는 암호마냥 서로만 알아볼 수 있는 온갖 약어와 두서없는 연구 결과로 빼곡이 채워져 있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이 마지막 페이지에 들어 있기도 했고, 그 답변을 이해하기 위한 주석이 맨 처음 문장에 붙어있기도 했다.
  둘 사이를 오가는 편지는 늘 감정 없이 담백했고, 자신이 알아낸 것과 알고 싶은 것에 대한 무미건조한 욕구만 가득했는데도 베로니카는 답신을 받을 때마다 알바에 대해 깊은 동료애를 느끼고는 했다. 그녀는 지성에 몸을 바치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를 잘 알았고 자신의 분야에 충실한 이를 존경했다. 비록 알바 로렌츠는 신과 낙원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에 상당히 회의적인 태도를 띠고 있었음에도, 그의 연구는 결국 신만이 줄 수 있는 안식을, 아무도 가 본 적 없는 낙원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에, 베로니카는 그가 ‘믿지 않는’ 것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신학이 뭔가, 신이 다 뭔가. 수십 개의 종교들이 수백 가지의 경전을 가지고 수천 마디의 말을 하더라도 결국 그 기저에 깔린 것은 모두 선을 향한 지향이 아니던가. 불신자라도 상관은 없었다. 신의 피조물들을 위한 영원한 이상향을 만들고 그것을 지켜낼 사람이라면-설령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신을 믿으면서 이웃을 착취하고 강탈하는 이들보다 훨씬 신실한 믿음을 가진 이가 아닌가.
  알바가 신을 믿지 않으면서 신의 도움을 간구하는 것에도 베로니카는 별로 불쾌함을 느끼지 않았다. 알바는 신을 믿지 않아도 개개인 안에 존재하는 영혼을 믿었고 그 영혼이 지닌 힘을 믿었다. 영혼의 물성, 에테르의 도움을 빌려서라도 영구기관을 가동시키려는 남자. 베로니카에게는 그것이면 충분했다. 언젠가는 그도 수많은 진리들 가운데 자신에게 꼭 맞는 신을 찾아내 평온을 얻기를 가끔 소망할 뿐, 편지를 통해 신을 믿으라고 강요하거나 자신의 신념을 고집스레 주장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영구 기관의 세 번째 조각-작용

  베로니카 플레처는 비록 물리학 실험에 자문을 해 주고는 있었지만 물리학 쪽으로는 전혀 문외한이었다. 그녀는 가끔, 알바 로렌츠가 가지고 있을 미완성된 영구 기관의 모델이 자신에게도 하나 있다면 조금 더 수월하게 실험을 도울 수 있고 조금 더 확실한 조언을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욕심이 나기도 했지만 샘플을 손에 넣을 방법은 없었다. 영구 기관이 완성되면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하기 위해 대량으로 생산할 방도를 찾아야 하겠지만, 아직은 개발 단계에 불과하니 부품들을 구해 제작해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게다가 알바 로렌츠는 기계에 들어갈 독창적인 부품들을 직접 만들거나 공장에 특수하게 주문하는 일이 많아서, 타국에 있는 베로니카가 그 많고 특수한 부품들을 구할 방법이 현실적으로는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알바에게 기계를 보내 달라고 하면 어떨까? 알바의 이야기를 듣기로는 아직 완성도 안 된 영구기관이 크기는 꽤 커서 파손이 되지 않게 운송하는 데만도 꽤 큰 돈이 들 것이며, 제작 단계에서부터 영구 기관의 대략적인 구조가 유출될 만한 일이 생기는 것이 영 탐탁지 않다며 난색을 표하는 듯 했다. 애초에 알바는 베로니카가 영구기관의 대략적인 설계도를 보내달라고 요청했을 때부터 한 번에 보내면 분실이나 유출처럼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세 장을 겹쳐 보아야 구조를 알 수 있도록 나누어 그려 보내겠다던 사람이었다. 쉽게 재현해보지 못할 설계도를 보내는 데도 그렇게 조심스러운 사람이니, 기계를 통째로 보내달라는 요청을 선뜻 응낙할 리가 없었다.
  결국 베로니카는 허술하게나마 스스로 기계를 재현해보려고 했지만, 당연하게도 필수적인 부품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또 알바가 쓰는 것과 완전히 다른 메이커의 부품들을 억지로 끼워넣은 부분도 있다 보니 절반도 완성하지 못하고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무리 봐도 불안정한 모습으로 위태롭게 덜컥덜컥 돌아가다가 탄내를 풍기면서 멈춰버리는 기계를 보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하필 나였을까?
  베로니카는 알바가 보내준 설계도를 보고 단박에 구조를 꿰뚫어 볼 만큼 머리가 좋았고, 물리학을 심도있게 공부해 보지 않았음에도 알바의 설명을 쉽게 흡수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전 세계의 신학자들 가운데 물리를 가장 잘 하는가 하면 그것은 당연히 아닐 터였다. 그녀가 아는 신학자들 가운데에는 취미로 과학을 꽤 하는 이도 있었고 예전에 촉망받는 과학자였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전향하여 극렬한 종교인이 된 이도 있었다. 베로니카는 신학계 내부에서도 독특한 주장을 펼치는 풋내기 취급을 받았고-지금이 자유의 시대였기에망정이지 그녀가 삼백 년만 일찍 태어났었어도 여자의 몸으로 신학을 하면서 범신론을 주장했다는 죄목만으로 화형대에 열 번은 올라야 했을 것이다-알바의 편지를 받기 전까지 물리 분야에 있어서는 일반인들보다 전혀 나을 것이 없었다. 어느 모로 보나, 그녀가 알바의 연구 동료로 선택될 이유는 없어 보였다. 대체 왜? 그녀는 영구 기관을 완성하기를 정말로 간절히 원했지만,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자신 외의 다른 신학자들이 더 큰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이 그녀의 양심을 계속 괴롭게 했다. 물리에 대해 잘 모르는 자신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원리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면, 영성에 대한 조언 뿐만 아니라 물리학적 지식을 서로 나눌 수 있을 만한 사람이라면, 알바의 영구 기관은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훌륭하게 완성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베로니카가 그러한 자신의 고민과, 물리학을 잘 안다고 신학계에서 소문난 박사들의 명단을 편지로 써서 알바에게 보냈을 때 돌아온 답변은 의외의 것이었다. 알바는 그녀가 보내준 명단의 학자들과 접촉하는 것을 한 마디로 딱 잘라서 거절했다. 그는 베로니카 플레처 이외의 동료를 구할 생각이 전혀 없으며, 설령 베로니카가 지금 연구에서 하차하기를 원한다 할지라도 자신이 다른 박사들에게 연락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알바는 정말 진심으로 베로니카 플레처라는 사람만이 자신의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것은 그가 지금껏 만났던 수많은 종교인들 가운데 자신의 야망을 비웃지도, 자신에게 신앙이나 신념을 강권하지도 않은 유일한 사람이 베로니카였기 때문이었다.
  알바 로렌츠는 베로니카 정도로 유연하고, 열려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연구를 돕기는커녕 방해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베로니카가 물리학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실제로 기계를 구현해내는 것은 자신의 몫이었고 베로니카에게 손을 벌릴 생각도 없었으니까. 베로니카 플레처가 신학계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도 알바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신학계의 떨떠름한 소문에도 괘념치 않았다. 괴짜이면서 풋내기이기에 감히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구 기관의 네 번째 조각-반작용

베로니카는 알바의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적어도 그녀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영적인 세계와 접촉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방법을 알바에게 알려 주었고, 또 그것에 도움이 될 만한 추가 자료나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는 약초 몇 가지를 직접 구해 보내 주기도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연구는 진척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순탄하지 않게 흘러가는 편이었다. 애초에 영구 기관에 영적인 요소를 접목하여 필연적인 에너지 손실을 막아 보려고 생각했던 때부터 알바 로렌츠는 연구 자료의 많은 부분을 수정해야만 했다. 그가 밤을 새가며 밝혀냈던 물리 법칙과 그 적용방법들을 뿌리부터 도려내고 거기에 자신은 잘 알지도 못하는 영의 세계에 대한 내용을 심어넣어야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머리로 연구 자료를 수정해야 하는 것을 아는 것과, 실제로 자신이 온갖 고생을 하면서 알아낸 자료들을 폐기처분하는 것은 달랐다. 특히 지금은 죽고 없는 옛 동료-헤르만 발자크와 함께 했던 연구 자료들을 일부 포기하는 것은, 좋지 않게 끝난 관계의 유일한 좋은 추억을 퇴색시키는 것만 같아 꺼림칙하고 씁쓸했다.
  헤르만 발자크의 아들인 루카스 발자크는, 스승을 단지 스승이 아니라 한 명의 저명한 과학자로서 신뢰했기에 그의 이상한 행동들마저 맹목적으로 수용했다. 알바가 영구 기관에 에테르의 힘을 불어넣겠다고 선언한 순간부터, 그를 천재로 여기고 추종하던 많은 과학자들이 그와 거리를 두려 했지만 루카스 발자크만은 끝까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루카스는 스승이 얼굴도 모르는 먼 나라의 신학자와 편지를 주고받는 것을 기껍게 여겼고 그녀와 스승의 편지 왕래 이후 연구가 퇴보하는 것처럼 보여도 언젠가는 단숨에 기계를 완성시킬 진리를 스승이 찾아내리라고 믿었다. 그는 알바가 그 많던 연구 자료들을 추려내 창고에 집어 넣고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굴어도, 알바가 가끔 이름도 모를 약초를 태우면서 그 연기에 엉망으로 취해 헛소리를 뱉더라도, 원래 천재는 변덕스러운 법이며 영감을 찾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고 굳게 믿었다. 무엇을 알아도 스승이 저보다 많이 알겠지 싶은 마음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알바 로렌츠는 베로니카와의 편지 왕래가 잦아질수록 깊은 좌절감에 빠져들고 있었다. 천성이 냉담하고 심지가 굳은 남자라 제자나 동료 앞에서 티를 내는 일은 없었지만, 그는 예전에 이미 한 번 포기했던 연구를 이제 와서 다시 되살리는 데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점점 더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베로니카에게 편지를 보냈을 시점의 그는 이미 악에 받친 채 무엇이라도 해 봐야 한다는 심정이었다. 애초에 헤르만과의 연구가 파국을 맞았던 이유도 그의 회의심 때문이었는데, 그 연구를 도로 시작한 것도 온전한 자의가 아니라 주변의 강권에 못이겨 어떻게든 끝을 내자는 마음으로 덤볐던 것이었으니 연구가 순탄할 리가 없었다.
  신에게 손을 벌리는 것, 사실 존재하는지도 잘 모를 영혼에게까지 힘을 빌리려 하는 것, 그런 것에 정말로 의미가 있을까? 미지의 영역을 밝히기 위해, 그는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또다른 미지의 영역을 이용하려 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연구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미지수가 하나일 때는 오직 하나의 식만으로도 답을 도출할 수 있다. 그러나 미지수가 두 개일 때는 두 답을 모두 구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식이 필요하다. 이것은 굳이 과학으로 엄정하게 증명하거나 거창한 논리적 해설을 덧붙일 필요가 없는 간단명료한 수학적 진실이었다. 두 개의 미지수가 존재하는데 오직 하나의 식만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구할 수 있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의 순서쌍들일 뿐, 하나의 명확한 답을 얻어내는 것은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할 터였다.



  영구 기관의 다섯 번째 조각-티끌만큼 작은 나사들

  <안녕하세요, 로렌츠 씨.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어가고 있나요?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새롭고 흥미로운 자료를 좀 찾았어요. 폴터가이스트 현상에 대한 연구입니다. 사실 이쪽에 대해서는 아직 신학계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하긴 해요. 악마의 소행이라는 사람도 있고 이미 죽은 자의 유령이 나타나서 산 자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거라는 사람도 있죠. 어쨌든 확실한 건 이 현상들이 물리학적으로는 전혀 설명이 되지 않으며 무언가 명확한 의도를 띠고 있는 존재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시그널이라는 점이에요. 이 논문들이 당신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요. 그리고 지난 번에 편지로 보내주셨던 물리학 자료들을 읽다가 생긴 의문점들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플레처 양. 연구는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영이라는 게 어떤 식으로 이 물질계에 영향을 끼치는지 조금 더 확실한 정의가 필요할 것 같아요. 입자라든가 파동이라든가, 뭐 그런 과학적인 형태 말입니다. 영들이 물질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그들이 이 세계에 간섭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그 방법을 좀 더 깊게 탐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물질계에 영향을 미치려면 그들 역시 물질적으로 드러나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들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미시적인 단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어떠한 물질적 교류가 있다면 그 흔적을 잡아낼 수단이 분명히 존재할 겁니다...>

  <로렌츠 씨, 저번에 보내 드린 자료에 오류가 있더군요. 죄송해요.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문제의 해답이 되리라고 생각했는데, 그 논문에서 다뤘던 영국 남서부의 유명 폴터가이스트 현상 두 건이 모두 사기극으로 밝혀졌다는군요. 어쨌든 당신의 의견에는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영이 물질계에서 어떤 작용을 일으키려면 분명 물리적인 방법으로 드러나야만 하니까요. 운동이 없는 곳에서 운동이, 열이 없는 곳에서 열이 발생하는 원리라...글쎄요, 수맥 탐지기나 영적인 기운을 탐지한다는 펜듈럼 같은 것이 조금은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네요. 분명히 단단한 장벽으로 가로막혀 있을 때에도 탐지하는 힘이 있는 물건들이니까요.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자료를 더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플레처 양. 문제의 그 논문들을 샅샅이 살펴봤는데 폴터가이스트 현상 자체는 사기극이라 하더라도 꽤 흥미로운 문장들이 있더군요. 23페이지 첫 번째 문단, ‘영들이 이 세계와 소통하고자 할 때 이 세계에서 먼저 그들을 발견하고 역-간섭을 시도하는 방법들이 때로는 여러 괴현상들을 해소하는 일에 도움이 되었다.’ 이 문장이 특히 재밌더군요. 기계에 영들의 힘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역-간섭이 필수적이겠지요. 비물질계의 에너지를 물질계로 끌어오고, 또 물질계의 불필요한 부산물들-가령 마찰열같은 것 말입니다.-을 비물질계로 환원시키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연구가 훨씬 많이 진척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아시는 자료가 있다면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저번에 질문해주셨던 작용-반작용 이론에 대해 간결하게 설명드리자면, 어떤 힘이 한 방향으로 작용할 때 그 매개체가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동일한 크기의 힘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구 기관을 영원하게 작동시키려면 부품들에 가해지는 이런 물리적인 힘들을 해소할 방법 또한 필수적이겠지요...>

  <안녕하세요, 로렌츠 씨. 급하게 쓰느라 편지가 조금 짧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보낼 짐이 좀 많아서 서둘러 부쳐야 제때 닿을 것 같군요. 영과 접선하는 수많은 방법이라...위자보드는 어떠신가요? 너무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고 있는 강령술 방법이기도 합니다. 저는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습니다만 당신을 위해 하나 구해서 동봉합니다. 영혼의 일방적인 간섭이 아니라 쌍방향 소통이 되고 대화가 이루어진다면 비물질계의 원리를 좀 더 잘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요. 강한 사념을 가진 영혼은 특정한 장소에 묶여 있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혹시 이미 죽은 자들 가운데 당신의 연구에 도움을 줄 만한 영혼은 없는지요?...>



  영구 기관의 여섯 번째 조각-공명

  알바 로렌츠는 조금 황당한 낯으로 베로니카 플레처가 보낸 거대한 짐꾸러미를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배에 실려 몇 달씩 여행을 한 흔적이 역력해서 꾸러미를 싼 갈색 종이에 얼룩덜룩한 정체불명의 얼룩들이 묻어 있고 끈이 나달나달하게 해져 있었다. 이 꾸러미를 가져다 준 제자-루카스 발자크는 여전히 꺼지지 않는 존경의 눈빛을 하고 그를 올려다보며, 물을 건너 온 소포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영구 기관의 대단한 부품이겠거니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꾸러미의 내용물은 그의 생각과는 백팔십도 다른 것이었다. 알바는 가능한 한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려고 애쓰며 편지를 곱게 접어 주머니에 넣고 꾸러미를 안아들어 연구실로 가져갔다.
  알바는 그간 베로니카에게서 약초나 괴상하게 생긴 부적들 따위를 받은 적도 적지 않았지만 이번에 보내진 것들이 남들 눈에 띄면 제 연구에 확실한 오명이 씌워질 것이 분명하다는 점을 잘 알았다. 그러잖아도 영이니 에테르니 하는 것들을 연구한답시고 이미 땅에 떨어진 명예를 더 실추시키기 싫었던 알바는 루카스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연구실 문을 단단히 걸어잠그고 나서야 포장지를 뜯어볼 용기가 났다. 소포는 꽤 무거웠는데 그 안에 든 것은 알파벳이 쓰인 묵직한 나무판과 모서리가 둥글고 화살촉 모양으로 생긴 돌이 다였다. 알바 로렌츠는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편지를 꺼내어 베로니카의 부연설명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포인터-화살촉 모양의 돌-을 들고 나무판 위에 가져다대서 ‘주위에 누가 있나요?’ 물으며 게임을 시작해요. 단, 절대 혼자 해서는 안 됩니다. 예, 아니요로 답할 수 있는 질문으로 한다면 더 편리합니다. 포인터가 가리킨 알파벳의 스펠링이 당신의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미래에 대해 묻는 것은 금기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뭐, 당신이 그런 걸 물을 일은 없겠죠. 돌을 보드 밑으로 떨어트리면 영이 떠나버리니 주의하세요. 게임이 끝날 때는 반드시 작별인사를 하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15분 이상 게임을 지속하지 마세요.>
  이것은-알바 로렌츠가 영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그가 지금껏 베로니카에게서 받았던 온갖 ‘접촉’ 도구들 가운데 가장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 위자보드는 영혼과의 교류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신문에 광고까지 낼 정도로 유명한 게임이었지만, 알바 로렌츠는 단 한번도 그것이 진실로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믿음 없이도 시도는 해 볼 수 있었다. 사실 모든 실험은 아무런 선입견 없이 행해져야 하는 것이기에, 알바 로렌츠는 완전히 정신나간 짓처럼 보이는 시도도 한 번은 무작정 해 볼 수 있었다. 그는 돌을 가져다가 표면이 곱게 갈린 나무판 위에 올려놓았다. 주의사항이 쓰인 종이를 세 번은 더 읽어 보았지만, 게임을 같이 해 줄 사람을 구하기는 싫었다. 제자인 루카스가 아무리 스승을 존경한다고 해도, 대뜸 세간에서 유행하는 강령술 게임을 같이 해 보자고 불러들여서 영구 기관에 대해 묻는다면 그 존경이 얼마나 더 갈 지는 알 수 없는 일이 될 터였다. 알바 로렌츠는 유의미한 변수가 될 수도 있을 중요한 지시를 어기고 게임을 시작하면서 이미 마음 속으로 위자보드가 실험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혼자 잡은 포인터이니 너무 세지도 않고 너무 약하지도 않게, 하얀 손톱 끄트머리로 돌을 지그시 누른 알바는 첫 질문을 던졌다.
  “-주위에 누가 있습니까?”
  방 바깥에 있는 누군가가 들을세라 아주 작게 입 밖으로 낸 질문이었는데도 질문이 웅웅 메아리치며 보드 위를 떠도는 것 같았다. 알바는 새삼 수치스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낯이 거친 흙바닥에 쓸린 것처럼 화끈거려서 그는 포인터를 쥐었던 손을 놓고 양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래도 나름 배울 만큼 배웠다는 과학자씩이나 되어서 이게 무슨 짓거리람.
  한숨을 깊게 내쉬고 마음을 추스른 그가 다시 위자보드에 시선을 주었을 때 포인터는 ‘YES’라는 글자를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어?”
  아까도 포인터가 여기에 있었던가? 분명 게임을 시작할 때만 해도 YES와 NO 사이에 돌을 두었던 것은 분명했다. 그러면 혹시 손을 뗄 때, 가운데가 통통한 돌이 고정되지 못하고 미끄러져서 옮겨진 것인가? 손가락을 포인터에서 뗐던 순간 돌이 흔들리면서 돌아가는 감각이 있었던가? 알바 로렌츠는 미심쩍은 눈길로 YES에 못박힌 화살촉을 쏘아보았다.
  결국 그는 다시 보드판 중앙으로 옮겨둔 포인터 위에 손가락을 올리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다음 질문을 생각하는 그의 머리는 혼란스럽게 뒤엉켜 있었다. 애초에 이 게임을 믿은 적이 없기에 물어볼 질문도 제대로 정하지 않고 의식을 시작한 탓이었다. 근처에 영적 존재가 있는지 묻는 것으로 첫 질문이 정해져 있었기에 망정이지, 첫 질문부터 그가 정했어야 했다면 단 하나의 질문으로 어떻게 이 게임의 무쓸모함을 간파할까 궁리하느라 무엇을 물을지 고르는 데만도 한참이 걸렸을 거였다. 결국 그는 자신이 내내 궁금해했던 것을 물었다.
  “영구 기관은 실현 가능합니까?”



  영구 기관의 일곱 번째 조각-마찰

  베로니카는 위자보드에 미래에 대한 것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일러 주었다. 그러나 알바의 질문은 정확하게 따지자면 자신이 그것을 실현할 수 있을지를 물은 것이 아니라, 영구 기관이라는 터무니없이 비현실적인 존재의 가능성 자체를 물은 것이었다. 알바는 포인터를 누르는 손에 최대한 힘을 풀고 그것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보드의 한 쪽으로 미끄러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형언할 수 없는 탐구의 공포와 미지에 대한 환희가 그를 동시에 뒤흔들었다.
  포인터의 뾰족한 끝은, 다시 한 번 YES를 가리켰다.
  알바 로렌츠는 위자보드라는 게임에 무척 회의적이었고, 포인터에 손을 댄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가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었기 때문에 명확하게 의도된 답이 나올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포인터를 쥔 사람이 자신밖에 없으며 또 자신이 손에 힘을 전혀 주고 있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확신하는 상황에서 표식이 미끄러지는 것을 보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 형체를 띠지 못한 누군가가 게임에 간섭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알바 로렌츠는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돌을 옮겼다면 그 질문에 절대로 YES라는 답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아직 끝내지 못한 실험의 결과를 흔쾌히 단언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과학자의 기본 자질이었다. 영구 기관을 완성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영구 기관의 실현 가능성을 확신할 수 있을까? 그가 무의식 중에 포인터를 이동했다면 MAYBE, 라는 답이 최선이어야 했다.
  그는 이제 형편없이 흔들리는 시선으로 보드를 응시하고 있었다. 게임에 참여하고 있는 혼령-혹은 지성을 가진 비물질은 어떻게 영구 기관이라는 말을 이해하고, 또 그것이 인간의 손에서 제작될 수 있다고 단언하는 것일까? 이 응답자는 영구 기관의 개념을 완벽히 이해하고나 있는 것일까? 어떤 질문을 던져야 그와 상대 모두 이해 가능한 소통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알바는 이번에는 포인터를 NO에 가져다 놓은 뒤 세 번째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나와 베로니카, 루카스의 연구를 도울 수 있습니까?”
  포인터는 NO라는 글자 위에서 잠깐 흔들리다가, 또렷하게 새겨진 MAYBE 위를 흐르듯 지나쳐, YES라는 답변 위에 도착했다.
  “당신은 베로니카를 알고 있습니까?”
  NO. 알바는 잠깐 질문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베로니카는 위자 보드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아마도, 자신과 게임을 하고 있는 이 응답자와 소통을 해 본 적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은 그녀와 관련이 있는 존재는 아닐 터였다.
  “당신은 나를 압니까? 그리고...나도 당신을 압니까?”
  YES. 두 질문을 연달아 했는데도 포인터는 제자리에 가만히 멈춰서 움직이지 않았다.
  문득 가장 끔찍하고 불길한 생각이 알바의 뇌리에 내려꽂혔다. 그는 자신의 머릿속을 스친 어처구니없는 생각에 스스로도 놀라서 감전이라도 당한 것마냥 황급히 보드에서 손을 뗐다.
  알바 로렌츠를 알고, 알바 로렌츠가 아는 사람. 신학계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베로니카’는 알지 못하면서 변변한 논문 한 장 세상에 내놓지 않은 ‘루카스’의 연구를 돕겠다고 나서는 사람. 영구 기관을 알고 있으며, 그것이 실현될 수 있다고-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말라는 과학자의 신조를 어길 만큼-강하게 확신했던 사람...
  “-헤르만 발자크, 자네인가?”
  억눌린 비명같은 질문이 혀끝에서 놓여나 거칠게 터져나왔다. 그가 손을 뗀 뒤 게임판 위에 동그마니 놓여 있던 포인터는 여전히 YES라는 답변 위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처음에는 느리게, 몇 초 뒤부터는 가속이 붙은 팽이처럼 빠르게.
  알바 로렌츠는 입술을 악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 서슬에 탁자 위에 놓여 있던 게임판과 포인터가 바닥으로 요란하게 떨어져 내렸다. 그는 허리를 숙여 가장자리가 살짝 깨진 보드판과 여전히 미친 듯이 돌고 있는 포인터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 안에서 돌이 요동치는 것이 느껴지자 그의 등줄기에 오싹하게 소름이 돋았다. 알바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위자보드와 화살표 모양의 돌을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 안으로 던져넣었다. 위자보드는 단순히 멍청한 사람들이 시간을 떼울 때나 하는 게임이 아니었다. 과학자의 신분이나 미지에 대한 열정을 아득히 넘어서는 범우주적인 미친 짓이었다.
  알바는 위자보드가 도로 불 밖으로 기어나올 것을 염려하기라도 하듯 성마른 감시의 눈초리로 벽난로를 지켜보았다. 그는 불길 속에서 그 삿된 것들이 형체도 보이지 않게 완전히 타 버릴 때까지 그 자리에 우두커니 멈춰 서 있었다.



  영구 기관의 여덟 번째 조각-톱니바퀴

  한동안 알바로부터 편지가 뜸하자 베로니카는 지난번의 답이 돌아오지 않았는데도 또다시 새로운 편지를 부쳤다. 위자보드를 사용해 보았는지, 그 결과는 어땠는지, 실험에 도움이 될 만한지...답장이 오지 않았어도, 아니, 오히려 답장이 오지 않았으니 먼저 물어볼 것은 많았다. 그러나 베로니카가 새로운 편지를 부친 뒤 몇 주가 지나 받은 답장에는 위자보드에 대한 언급이 단 한 줄도 없었다. 질문에 대한 답이 오지 않은 것은 이제껏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알바는 물리학을 잘 모르는 그녀가 아무리 이상한 질문을 던져도, 아무리 바보같은 질문을 던져도 모든 물음에 꼬박꼬박, 나름대로 상세히 답을 적어 보냈다. 그러나 그녀가 보내준 위자보드에 대한 답변만을 최대한 회피하는 것처럼 내용이 뚝 잘린 편지를 받고 나니 베로니카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다는 것만은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그녀는 일의 상세한 전말을 몰랐으니 알바가 위자보드를 좋아하지 않았거나, 아예 고려할 가치도 없는 미신으로 치부하여 처분해 버렸으리라 여길 따름이었지만, 그녀는 배려심이 깊었기 때문에 다음 편지에서는 위자보드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상한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진행하는 연구에 대해서도 이야깃거리가 생기기만 하면 그녀에게 있는 대로 보고하며 앞으로의 방향을 논의하던 알바였는데, 그런 그의 이야기에서는 냉담하고 단단한 어투와는 다르게 감출 수 없는 열정이 느껴졌는데, 도착한 편지는 마치 내키지 않는 글을 억지로 쓴 것처럼 무미건조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편지를 받았으면 답을 하는 것이 도리라 꾸역꾸역 써내려간 것처럼, 유용한 정보도 새로 알아낸 사실도 별로 없고 평소와 달리 미사여구 투성이의 인사말만 쓸데없이 길었다.
  베로니카는 그 편지를 앞에 놓고 고민에 잠겼다. 대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것일까? 흔히들 말하는 슬럼프라는 것이 알바에게 찾아온 걸까? 몇 년을 바쳐 끊임없이 연구해왔던 일이니 좀처럼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에 질릴 법도 하기는 했다. 게다가 영성학 분야의 자문이라고 앉혀 놓은 자신도 연구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 같으니...그녀는 자책감이 서린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베로니카는 지금껏 그런 적이 없을 만큼 짧은 답신을 써 보냈다. 어쩌면 이제는 제 편지를 읽는 것도 귀찮아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안녕하세요, 알바. 귀한 허브를 구해 보냅니다. 카바카바라고 하는 여러해살이 풀인데, 입수 루트가 까다로워 많이 구하지는 못했습니다. 육신과 영혼의 경계를 허물고, 신체 기관의 존재를 느끼지 않으면서도 오감을 증폭시켜 예민하게 만드는 풀이라고 해요. 태평양의 주술사들이 예언을 할 때 즙을 내어 사용하는 뿌리라고도 하고, 고대의 어느 국가에서는 술을 담글 때도 썼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제가 구한 것은 유통 과정에서 이미 건조되어 버린 것이지만, 이것을 가루내어 물에 섞어 마셔도 즙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문헌이 존재합니다. 부디 이 약초가 연구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영구 기관의 아홉 번째 조각-긴급 정지 레버

  알바 로렌츠는 까맣게 시든 눈을 하고 자신 앞에 놓인 비커를 내려다보았다. 지난번 위자보드의 악몽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는데 또다시 베로니카가 권한 방법을 시도해보는 자신이 우습고 무력하게 느껴졌다. 칸나비디올, 그리고 카바카바, 거기에 증류수를 더하고 열을 가해서 삼 분간 끓인다, 알바는 신경질적으로 연구 노트를 읽었다. 목이 아프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보니 때이른 감기에라도 걸린 모양이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영구 기관을 완성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과학자로서의 자긍심을 버리고 영이라는 허무맹랑한-그리고 몹시도 비과학적인-세계에까지 손을 대면서라도, 영구 기관을 완성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하나로 결말 없는 실험을 여기까지 질질 끌고 왔다.
  사실 알바가 인정하기 싫었을 뿐, ‘과학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실험은 이미 실패로 돌아간 거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그는, 몸 안의 에너지를 이용해 중력을 거스르며 공중부양을 하는 인도의 수행자들이나 이글거리는 숯불 위를 상처 하나 없이 걸어나가는 동방의 고승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그들은 적어도 자신들이 하고자 했던 실험에 성공이라도 했지, 알바 로렌츠는 아직도 영구 기관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들보다 못했다.
  그것은 순전히 찰나의 실수였다. 온갖 잡념에 시달리던 그가, 약을 탄 차와 카바카바가 든 비커를 헷갈리고 입술을 축인 것은. 알바는 처음에는 혀 끝에 훅 와닿는 쓴맛에 미간을 찌푸리고, 그 다음에는 입 안에 진득하게 남아 있는 강렬한 허브 냄새에 턱을 일그러트렸다. 자신이 마신 것이 약차가 아니라 걸쭉한 카바카바 용액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물이 아니라 위스키나 럼처럼 독한 알코올에 카바카바를 섞는 게 나았을 것 같다는 뒤늦은 후회가 들었지만, 이제 와서 뒷맛을 술로 씻어내려봤자 구역질이 심해지기만 할 것 같았다. 어차피 카바카바 잎의 효과를 증폭시키는 일이 끝나면 임상실험을 해 볼 생각이었지만 미완성된 약물을 마셔버린 것은 엄연한 대형사고였다.
  그는 짧게 저주의 말을 중얼거리며 탁자 위에 입을 가신 약차 잔을 내려놓았다. 혹시 모를 부작용에 대비해 소파 위에 길게 드러눕기도 했다. 베로니카는 약효가 들 때까지 얼마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지는 알려 주지 않았다. 제게 쓴 편지를 보니 그녀 자신도 직접 카바카바를 복용한 적이 없어 모르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딱 한 모금에 불과한 양이었으니 아무 약효 없이 이 사고를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기대와 더불어, 알바는 소파에서 조금 고개를 들면 보이는 커다란 괘종시계를 바라보며 직접 시간을 쟀다. 초침이 원을 그리며 열 바퀴를 돌았을 무렵이던가, 알바는 점점 이상하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시야가 일렁거리기 시작하는데, 어지럽거나 귀가 멍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그저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사물들이 젤리처럼 부드럽고 말랑해져서 누르면 누르는대로 변형되고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알바는 누운 채로 팔을 들어올려 양 팔을 겹쳐 보기도 하고 팔꿈치를 구부렸다가 펴 보기도 하며 자신의 몸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했다. 오른손 손가락으로 왼손 손등의 단단한 뼈마디를 더듬는 순간, 수백 개의 무른 덩어리로 이루어져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던 그의 손등이 손가락으로 관통되었다. 그러더니 이내 양쪽 손가락에서 손목, 팔뚝, 팔꿈치와 어깨까지 그의 신체가 갈라지고 이지러지며 형체를 잃어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알바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어쩐지 자신의 육체가 낱낱이 분해되고 그 자리에 영혼만 남는 것이 아주 흔하고 당연한 일 같이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눈 없이도 앞을 보고 귀 없이도 소리를 들으며 살갗 없이도 모든 사물을 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야 한쪽에서는 괘종시계의 바늘을 닮은 황동빛 얄쌍한 물고기가 너울너울 춤을 추었고 그 위로 푸른 전기 불꽃 같은 물결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며 부스러졌다. 몸이 붕 뜬 것 같고 앞뒤와 상하좌우가 전혀 구분되지 않았다. 그는 빈 우주 공간에 둥둥 뜬 것처럼 팔과 다리를 허우적거렸지만 이내 어떤 자세를 취하든 그대로 안정감있게 멎어 있을 수 있음을 느끼고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기를 그만두었다.
  알바 로렌츠는 그 순간 모든 것이면서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는 베로니카 플레처가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눈-즉 이미 흩어져 버린 그의 시각 기관에는 당연히 그녀가 보이지 않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보려는 노력을 하면 볼 수 있었다. 베로니카 플레처는 윤곽이 뚜렷하지 않은 하나의 빛 덩어리 같기도 했고 무수한 색채의 조합 같기도 했으며 수백 개의 음표로 그린 교향곡 같기도 했고 칼날과 실크로 빚은 도자기 인형 같기도 했다. 그가 그간 머릿속으로 어렴풋이 그려왔던 동료의 모습과는 하나도 맞지 않았는데도 알바는 그녀가 베로니카 플레처라는 사실을 알았다. 아기가 거울을 처음 보고도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곧 깨닫는 것처럼, 알바는 베로니카를 처음 보고도 그녀가 베로니카 아닌 다른 어느 누구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베로니카는 세계의 일부였고 알바는 그 세계였다. 동시에, 알바는 세계의 일부였으며 베로니카는 그 세계였다. 두 세계는 서로를 삼키고 서로를 토해냈다. 두 사람은 끝없이 서로의 조각이 되었으나 온전한 서로가 되지는 못했다. 둘은 같은 모양의 입으로 서로를 잡아먹었고 똑같은 손으로 상대를 재조립했다. 그러나 둘은 결코 처음의 모습으로는 돌아가지 못한 채 끊임없이 팽창하고, 팽창하고, 팽창했다. 상대를 삼키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조각을 찾지 못하고 어름더듬 꿰맞추며 서로의 부피를 늘려나가던 두 존재는 이윽고 거대한 괴물처럼 변한 채 입술과 손조차 되찾지 못하여 육중한 부산물 더미로 멎어 버렸다. 영원히.
  무한 속에 죽어 남겨진 별들처럼.



  영구 기관의 열 번째 조각-열손실

  알바 로렌츠는 그 후로 아주 오랫동안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 베로니카는, 그가 연구 때문에 눈코뜰 새 없이 바쁜 모양이지, 이제는 내 도움 없이도 해나갈 수 있을 만큼 감을 잡은 모양이지, 안도하면서도 내심 서운한 마음을 버릴 수 없었다. 그나마 그녀가 마지막으로 보냈던 것이 아주 어렵게 구한 카바카바 잎이었다는 사실이 베로니카의 쓰린 마음을 달래 주었다. 카바카바의 효과가 너무나 좋아서, 그래서 물질계와 비물질계를 잇는 진리를 낱낱이 알아내 영구 기관에 적용하고 그동안 막혔던 연구를 거침없이 진행하느라고, 알바 로렌츠는 그녀에게 짧은 글 한 줄 적어 보낼 시간도 없는 모양이었다.
  동료와 주고받던 편지가 그리워질 쯤이면 베로니카는 자신이 서툰 솜씨로 알바의 설계도를 재현해 만들었던 미완성 영구 기관을 한 번씩 작동시켜 보았다. 비록 너무나도 허술해서 한 바퀴를 구를 때마다 다시 손으로 부품들의 위치를 일일이 교정해 주어야 했지만, 베로니카에게는 꽤 즐거웠던 연구의 유일한 기념품이었다. 알바로부터 오던 편지가 끊겼어도 베로니카는 계속해서 물리학에 대한 공부를 이어나갔다. 몇 권의 책과 간단한 도구를 사서 스스로 실험을 고안해보기도 했다. 영구 기관의 아이디어는 여전히 그녀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었고, 그녀는 어떻게 영원한 운동을 유지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물리학만 알던 알바가 신학을 익혀 영구 기관을 만들어낸다면, 신학만 알던 자기도 물리학을 익혀 영구 기관을 만들 수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동료의 연구가 잘 되기를 바라며 바치는 기도도, 혼자 걸음마를 내딛듯 서투르게 시도해보는 실험도, 이도저도 다 지겨워지는 날이면 베로니카는 밀린 신문을 읽었다. 그녀는 영구 기관이라는 대단한 발명을 해낸 남자가 신문 일 면에 크게 실리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빈곤과 착취를 일소하고, 단숨에 인류의 구세주로 등극할 남자. 베로니카는 그가 그 영예를 자신과 완벽히 반으로 갈라 나누어 가지는 것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인터뷰 속에 영혼의 물성과 에테르에 대한 자문의 역할로 짧게나마 뚜렷히 표기되기를 원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알바 로렌츠의 소식을 다시 접하게 된 것은 신문의 가장 첫 장이 아니라 전혀 의외의 페이지에서였다. 그녀가 생각했던 것만큼 명예로운 일은 절대 아니었다.
  해외의 사건사고들을 다루는 신문 면에 대문짝만하게, ‘영구 기관을 연구하는 과학자, 표절 혐의가 드러나다’라는 활자가 박혀 있었다. 국외에서 벌어진 일이라 소소하게 다루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이 일이 어지간히 큰 논란이 되었는지 한 뼘이 넘는 기사에 사진까지 몇 장이나 붙어 있었다. 베로니카는 영구 기관이라는 글자를 읽자마자 반사적으로 파르르 떨리는 손 끝에 힘을 주었다. 그녀는 기사 옆에 박혀 있는 과학자의 흑백 사진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속으로, 대체 왜요, 로렌츠? 라고 되물었다.
  기사 내용을 차근히 읽어보고 나서도 혼란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알바의 연구를 취재한 기자는 알바의 동료였던 헤르만 발자크와 그 아들 루카스 발자크의 이야기를 실어 다루면서도 어느 쪽이 옳다느니 법적으로는 어느 쪽이 유리하다느니 같은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저 이 일로 실추될 알바 로렌츠의 명성과, 난항을 겪게 될 영구 기관 실험에 대해서만 구구절절 써 놓았을 뿐이다. 여전히 알바로부터 편지는 오지 않았지만, 베로니카는 빠른 시일 안에 그에게 편지를 다시 써 보낼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영구 기관의 열한 번째 조각-재가동

  <알바 로렌츠 씨에게.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지난 번 편지 이후로 꽤 시간이 흘렀지요. 답장이 돌아오지 않은 것을 보니 연구에 바쁜 모양이라 괜히 당신을 방해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편지 보내기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영구 기관을 공부하는 일마저 그만둔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저도 나름대로 자료를 모으고, 실험을 계획해 보았습니다. 제가 보냈던 약간의 카바카바 잎이 조금은 도움이 되었을까요? 그랬다면 저도 기쁠 것 같습니다.
  오늘 제가 이렇게 다시 펜을 든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우선, 영구 기관의 제작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정보의 출처를 밝힐 수는 없지만 올레투스 장원이라는 곳에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비물질계에 속해 있는 영혼을 물질계에서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한다고 해요. 상세한 내용은 잘 모릅니다만, 만약 이 정보가 진실이라면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비물질계에 간섭하는 방법이 실제로 존재하고 우리가 그 방법을 조정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사실 저는 이 방법이 진실로 옳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영구 기관을 위해 이런 수단까지 동원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확인을 위해서, 어쩌면 그 수단을 저지하기 위해서- 제가 직접 장원에 찾아가 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당분간 편지를 쓰지 못할 지도 모르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물론 그곳에서도 당신께 편지를 보내는 일이 가능하기야 하다면야, 기회가 닿는 대로 수시로 제가 새로이 알아낸 정보들을 전해 드릴 것을 약속합니다.
  제가 당신께 편지를 쓴 두 번째 이유는 다소 불미스러운 소문이 바람을 타고 국경을 건너 이곳까지 전해져 온 까닭입니다. 굳이 구구절절 묘사하지 않아도 먼저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당신은 그간 언론이나 과학계에 아무런 입장을 내보이지 않는 것을 입장으로 취하고 계셨던 모양이나, 저는 당신이 실제로 남의 연구를 훔쳐 자신의 것인 양 세상에 드러내는 불한당은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당신과 발자크 부자(父子), 2대에 걸친 악연을 다룬 기사를 보았을 때 제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저는 당신이 자문을 요청하며 제게 써 보냈던 첫 편지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호전되거나 소생할 가망이 전혀 없어 보이는 아이를 둔 부모처럼, 최후의 수단으로 영적인 힘마저 빌리려고 들었던 당신의 절박함을 기억합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비웃고 흘려보내는 신학적 주장들과 민간에서 장난삼아 전해지는 주술적 요법들도 일일이 진지하게 검증하려 했던 당신의 성실함을 기억합니다. 직접 하지 않은 연구였다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을 부분을 제게 상세히 풀어 알려주었던 당신의 정확함을, 끝을 모르고 질문을 던지는 저에게 마찬가지로 끝없는 답변을 보내 주었던 당신의 열정을 기억합니다.
  그러니 알바 로렌츠,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당신이 당장의 복잡한 인간사를 피하고 싶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든, 불가피한 악역을 자처하며 위악을 떨고 있는 것이든, 혹은 정말로-사소한 오해가 번져 이토록 큰 일이 되었든, 저로서는 사실을 가릴 방법이 없습니다. 하오니 이 사건에 대해 진정한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세상이 모두 알지 못해도 좋습니다. 저만은 당신의 진실된 속마음을 듣고, 끝까지 당신의 편에 서 있고 싶습니다. 당신이 제게 서신으로 보여주었던 그 모든 미덕들을 진위 여부도 검증하지 못한 풍문들에 묻어 퇴색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 보내는 답변이 어떤 내용이든 그 말을 믿고, 당신 곁에 남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신실한 벗,
  베로니카 플레처>

 

 

 

ⓒLeParadis_Perdu

'script' 카테고리의 다른 글

Cosmic Horror(1)  (0) 2024.03.11
COGITO, ERGO SUM  (0) 2024.03.11
HOME FOR SALE  (0) 2024.03.11
지하의 쌍둥이 사고실험 검증  (0) 2023.08.14
永久적인 열망  (0) 2023.07.16
myoskin